난 출가수행자다.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된 이력은 짧지만 우곡선원을 만나면서부터 수행의 바른 길을 보았고 마음이 무엇인지, 왜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를 절감하여 그 현장을 서술해 본다.

출가 이후 줄곧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다양한 수행법들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해오고 있었지만 뚜렷한 동기를 맞지 못하여 고심하던 중 불교계 신문에 자주 등장하던 우곡선원을 접하고 직접 우곡의 참선법회에 동참하면서부터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다.

< 慧城 >

불교는 나의 모태 신앙이다. 불교색이 짙은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불교의 본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불교 학생회 활동도 하였다. 그때는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좋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예금통장 잔고를 늘리고, 새 옷을 사 입고, 자동차를 굴리면서 그런 것들이 보람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느낌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행복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무의미한 일상이 겹칠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왠지 모를 공허감이 커져갔었다. 뜻 모를 허무감을 채우기 위해 먹고, 마시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봤지만 그것으로는 마음의 공백을 채울 수 없었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넘지 못할 허무감만 커져갔었다.
“도대체 이 허전함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이런 생각들로 방황을 하던 중 왕자의 자리까지 버리고 출가한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중에 출가를 결심, 어느 날 결행하였다. 나의 출가 변(辯)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무의미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것이었기에 출가를 하면 간단히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출가수행자로서의 삶은 그리 간단치 만은 않았다. 아(我)를 버리려고 재삼 각오를 다잡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익힌 습(習)이 끊임없이 들고 일어났다. 물론 출가자로 살게 되면서부터 물질에 대한 집착이 줄고 반연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 진 것도 사실이다. 예불 중에 회한에 복받쳐 진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몸부림치듯 한 일련의 수행덕분으로 마음이 순화되고 쉬어지는 기쁨도 있었지만 출가자라고 회피할 수 없는 내, 외적인 삶의 경계에 부딪칠 때면 요동치듯이 흔들리는 마음은 여전하였다.

불교는 8만4천의 위대한 교설과 진리세계를 담고 있지만 내 열정만으로는 눈과 귀가 열리지 않았고 무심과 마음의 힘이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부처공부에서 선지식 인연이 없으면 안된다는 말은 귓전으로 흘렀는데 공부에 심혈을 기울일수록 그러한 말들이 바로 내 문제였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불교 언론을 통하여 심중에 묻어 두었던 우곡선사라는 분을 한번 만나봐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부산 우곡선원 법회에 동참하였다. 당시 신수대사의 관심론(觀心論)을 해제하고 있었는데 대중을 압도하는 힘과 실생활에 바로 접목시키는 법문은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면서도 처음 얼마 동안은 반신반의 하며 법회에 동참하였다. 우곡선사라는 분이 출가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과 재가자가 지도하는 선원에서 공부한다는 생각에 걸려 공부는 좋지만 내심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란 금강경의 구절을 외우면서도 눈앞의 상(相)에 익숙한 중생심을 내려놓기는 어려웠었다. 불교의 기원인 석가모니부처님이 삭발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불교지도자는 당연히 나와 같은 모습의 출가자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놓고 비우고 버리기’라는 구도기를 통해 이분의 불교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내 마음의 불편함도 사라졌었다. 또, 주경야독하는 우곡선원의 법회시간으로 말미암아 먼 지방에서 온 나는 가끔 우곡선원에서 묵게되었다. 이때면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야단법석 장에 자연스럽게 끼여, 생생한 수행체험이며 실생활과 접목된 불교이야기는 나의 의심을 내려놓기에 충분하였다. 또 하나 놀란 점은 대부분 재가불자들로 구성된 우곡선원 특유의 정진력이었다. 빌고 구하는 기복 불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곡선원 수행풍토하며, 체험으로 이루어진 합리적인 참선공부 방법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선진모델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하였다. 참선수행을 현대의 패턴에 맞게 프로그램화시켜 체계적으로 접근시키며, 경전과 조사어록을 실생활과 관련지어 아주쉽게 해제하는 역량은 도무지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우곡선원은 불교계 최초로 ‘禪의 일상화 대중화 세계화’라는 슬로건으로 학생과 교사, 일반인,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정기적인 참선교육 활동은 바로 21세기를 선도할 人間佛事 원력과 맞닿아있었다. 세계적으로 불교 사상의 과학성과 우수성이 입증되고 禪이 21세기의 대안사상으로 주목받는 요즘 우리나라는 불교 인구가 줄고 있다는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또, 타종교계 인사가 고위 공직이나 언론계에 상대적으로 많이 진출함으로서 불교계의 목소리와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고도 한다. 이런 현실에 우리 불교계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지나친 외형 위주의 불사나 빈약한 수행력은 본말이 전도된 모습이다. 그러므로 합리적 사고방식을 갖춘 현대인들이 하나, 둘 불교계에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닌지, 자기성찰과 자기 쇄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우곡선원에서 추진하는 종합 禪 Center 사업이 원만히 성취되어 人間佛事의 장으로 우뚝 서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