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에 나름대로 열성을 다 하였지만 마음 한구석에 맴도는 허전함은 해결할 수 없었다.
부처님은 깨달았다고 하는데 그 깨달음은 무엇이며, 나도 깨달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불교공부를 하면 할수록 의심만 더욱 가중되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인터넷을 통하여 지금의 우곡선원을 알게되어 2000년도 12월에 우곡 참선교육 제3기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처음 우곡선원을 방문하였을 때 일반 아파트와 같은 평범한 환경과 그 흔한 불상도 두지 않고(2003년도 본 선원을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불상을 모셨음) 중앙정면에 팔정도만 게시되어있어 상에 익숙한 나로서는 좀 의아하게 여겨졌었다. 또 옆방에서 여러 거사들과 어울려 차담을 하는 분이 일반수행자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이 바로 우곡선원을 이끄시는 우곡선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생의 눈에는 중생만 보이기 마련이다. 평범한 모습으로 여러 도반들과 어울려 있는 우곡선사라는 분이 내가 생각하고 있듯이 오랜 수행경력이나 특별한 모습으로 치장되어있지 않아 내 좁은 소견으로는 내가 잘못 왔나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생각으로 참선교육 3기생으로 등록을 하였다. 그런데 5주간에 걸친 참선교육을 통하여 내 생각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우곡선원에서의 참선강좌내용은 기존의 불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방법과는 너무나 상이하였다. 그것은 고답적이고 맹목적으로 여겨지는 종교관행을 뒤쫓는 것이 아니라 인성(人性)을 정립하고, 수행(修行)을 통해 이치(理致)를 섭렵함으로써 지혜(智慧)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듈로 짜여져 있었다. 특히 우곡선원의 오계원(五戒願)은 "불법을 토대로 예(禮)와 덕(德)을 배양한다. 실상관법(實像觀法)을 통하여 業[고정관념]을 정화한다. 수용하는 마음으로 만상(萬象)과 조화를 이룬다. 대의심(大疑心) 대분심(大憤心) 대신심(大信心)으로 미혹(迷惑)에서 벗어난다.
하심(下心)하여 시절인연(時節因緣)을 수용한다"로 정의하고 있어 불자들이 흔히 알고있는 "살생하지 마라"는 등의 너무나도 당연한 불교계율을 뛰어넘어 자신이 쌓은 수행력으로 직접 피안의 세계로 거듭나는 오묘한 참선강의와 수승한 체험담으로 짜여져 있었다.
특히 우곡선원에서는 참선공부의 기본바탕으로 실상관법(實像觀法)을 심신수행으로 삼고 있다. 실상관법은 연기하는 존재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觀)하는 것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끊어짐 없이 선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상의 심신수행법으로, 관하는 대상이 태양과 같은 불(火) 기운의 빛[光明]일 경우에는 일상관(日想觀) 또는 화관(火觀)이라 부르며, 맑고 영롱한 물방울 같이 물(水)기운의 빛일 경우에는 수상관(水想觀) 또는 수관(水觀)이라 부르고, 대지와 같이 땅(土)기운의 빛일 경우에는 이를 지상관(地想觀)이라 부른다. 이렇게 실상관의 대상은 그 어떤 것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삼라만상 모두가 실상관의 대상이 되며, 이 실상관으로 나의 고정관념이 충분하게 녹아들면 내 안에 우주를 다 담아도 부족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되는 실상관법은 본 선원만의 참선방법이다.
흔히 불교계에서 시행하고 있는 간화선이나 근래 대두되고 있는 위빠사나와는 다른 참선방법이라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으나, 이 실상관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6년간 고행 후 7일간 보리수나무 아래서 선정에 든 것이 바로 이 방법이며 또한 "佛說觀無量壽經"에서 고증할 수 있는 참선수행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상관법은 본질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본질에 이르는 방법이다. 실상관법은 [Why : 이유]가 아니라 [How : 방법]의 세계이다. 진리가 무엇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 진리에 도달하느냐의 문제이다. 철학은 이렇게 묻는다 "존재의 실상은 무엇인가" 그러나 과학은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존재의 실상을 경험할 수 있는가" 따라서 실상관법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이다.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지적인 이해를 위한 지식만 준비되어 있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실상관법은 그렇지 않다. 실상관법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수행자 자신의 절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적인 이해의 세계가 아니라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자연과 나의 성품이 서로 연결되는 구체적인 체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수행자의 사고(思考)와 두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실상관법은 수행자 전체를 필요로 한다. 존재의 실상을 수용하기 위하여 수행자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상관법을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의 자물쇠를 모두 부숴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존재의 실상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우리가 의지하는 이 몸과 모든 형상[色]은 연기하는 인연화합물이며 태초에 일기(一氣)에서 벌어진 것이므로 모든 형상은 항상하지 않음을 굳게 믿고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실상관은 물질의 근본에너지인 빛을 방편으로 어리석음에 빠진 고정관념과 모든 번뇌요인을 멸하고 자비의 성품이 깃드는 위없는 지혜의 문(門)이기 때문에 우곡선원에서는 실상관법을 참선공부의 기본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실상관법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내 경험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실상관을 할 수 있으며 또한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되는 경우보다 잘 안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되느냐, 안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실상관을 할 수 있는 수행자세가 되어 있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상사와 직원 간의 대화에서 실상관을 하면서 판단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특히 상대방이 화를 내는 경우에 실상관을 하고 있을 때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 왜냐하면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하는 자연의 법칙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정이나 직장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실상을 관(觀)하는 수행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처음부터 실상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실상관을 생각하고, 실상관을 하겠다는 의지가 일어나면 그 다음에 실상관이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사무실에서 세면장에 갈 때 발걸음을 관하고, 세면장에서 물과 손씻는 행을 관하고, 전기드라이기로 손을 말리는 행을 관하는 등 의도적으로 실상관을 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 출·퇴근 시에도 옆사람의 목소리와 열차의 각종 소리를 관하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소리와 느낌을 관하는 등 나와 만나는 모든 대상을 상대로 실상관을 하게 되면 이슬에 옷이 서서히 젖듯이 내 일상생활을 관할 수 있는 수행자로서 서서히 변모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하다보면 출·퇴근 시 마주 대하는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너무 새롭고 신기한 모습으로 닿아온다.
우리는 보통 사물을 대할 때 외형의 모습만을 보고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한치의 오차도 없어 삼라만상은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하는 것이 진리이다. 이러한 진리를 나와 만나는 모든 대상을 상대로 관하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점점 없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입장이 아닌 우주의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좌선의 자세에 대해서도 기존의 선가에서 고집하는 결가부좌나 반가부좌에 연연할 것 없이 각자의 체형에 따라 곧고 부드러운 정좌를 취하면 된다는 평이한 좌선방법은 나도 이제 부담없이 좌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좌선을 할 때 자기체형에 맞는 자세로 앉음으로써 정신이 고요히 안정되고 식(識)이 맑아져 점차 대자연의 이치와 계합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호흡 법은 특별한 방법과 기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체득하는 것이며 진리가 다 그렇듯이 너무나 평이한 가르침은 충격과 감동이었다. 들숨과 날숨은 생명력의 징표이면서 지혜의 불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호흡은 날숨만을 수지하여 놓고 비우고 버림으로써 탐욕을 놓게 되는 이치를 체득시키는 방편이라는 것과 그것이 광야의 일인이 되는 너무나 합당한 법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방편으로 들숨은 의식하지 말고 날숨만을 의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좌선시 호흡은 들숨과 날숨 과정에서 기(氣), 에너지(Energy) 등과 같은 그 무엇을 획득하여 나와 내 것을 증장 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호흡을 통하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파동을 가라앉히고 평정을 찾아 오히려 영원한 내 것은 실재(實在)하지 않는다는 이 우주의 존재실상(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선시 들숨을 의식하게 되면, 들숨을 의식하는 그 하나 하나에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탐.진.치 삼독의 관념이 들숨과 함께 밀려들어오므로 수행자가 가 닿고자 하는 존재의 실상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선 수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나(나와 내 것만을 주장하는 거짓 나)를 놓고, 비우고, 버릴 수 있는 확신에 찬 용기이다.
매주법회 때 시행하는 20분간의 좌선실수(坐禪實修)는 호흡을 단전으로 떨어뜨려 즉시 입정에 들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며 그러므로 선정(禪定)을 일상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선지식의 인도가 있는 바른 호흡은 혼자서는 여간해서 선정에 들 수 없는 참선의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럴 때 비로소 방법에만 매달리는 단전호흡을 뛰어넘어 선정의 모태인 전신호흡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나와 같은 초년생들에게 꾸준한 수행의 필요성을 재삼 인식시켜 주었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삼지법을 통한 좌선실수 체험은 내 기혈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본 선원은 화두문자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원래 상존하는 대자연 에너지와 교통하기 위한 실상관법을 수행의 주안점으로 삼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기존 선가의 참선수행방법과는 상이한 우곡선원의 실천적 참선수행법은 좌선실수를 꾸준히 수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우곡선원과 인연 맺어진 이후 대주혜해(大株慧海)선사의 돈오입도요문론과 달마대사의 혈맥론(血脈論), 무심론(無心論), 신수대사의 관심론(觀心論) 등의 강설은 나의 육진경계를 닦아내는 세척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제방에서는 본 우곡선원에서 처럼 체험에 입각한심오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조사어록은 시대에 관계없이 수행자의 마음의 거울로 삼고 나를 비추어보고 닦아야만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사어록에 묶이게 되면 마음거울의 작용이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우곡선사님의 설법과 도반들과 함께하는 수행을 통하여 일상생활에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선 가정생활에서는 자녀와 배우자를 대할 때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수행자의 도반으로 인식을 하게 됨에 따라 짜증을 내거나 화을 내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맞벌이를 하는 나로서는 종종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서 괜히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였으나 우곡선원에서 수행을 지어간 이후 나도 모르게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됨을 보고 나 자신 스스로 놀라게 되었다. 또한 직장생활에서는 중간간부인 나로서는 직원을 평등하게 대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며, 또한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남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묵묵히 관할 수 있는 실상관법을 통하여 수행의 대상으로 삼으면 자연히 문제가 해결되는 법이 바로 수행자의 올바른 삶이라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또한 이 세상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그냥 생긴 것이 아니고 다 인연으로 그 자리에 있다는 마음으로 대하게 됨에 따라 우주만물이 너무나 숭고하고 아름답게 와 닿는다. 그 전에는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가지고 좋은 사람, 좋지 않은 사람으로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내가 아닌 우주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 누구나 똑 같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다. 이렇게 수행을 하다보니 출퇴근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인연에 의한 소중한 만남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니 내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지고 마음속으로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하고 발원하는 이 기쁜 마음이 우주와 직접 연결된 것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수행하고 있다.
부설거사는 "눈으로 보되 보는바가 없으니 분별이 끊어지고, 귀로 들어도 듣는 바가 없으니 모든 시비가 끊어진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잠을 잘 때까지 온종일 보고 듣지만 무엇을 보았다 하고 무엇을 들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 놓고 비우고 버리면 저절로 편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진리인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이를 일상생활에서 수행으로 삼고 있다.
나는 이제 올바른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더욱 하심(下心)하고, 만상(萬象)을 수용하는 자세로서 나에게 진실의 눈을 뜨게 해준 우곡선원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아 자비원력을 더욱 키워 나아갈 것이며 실상관법이라는 참선수행으로 새롭게 변해 가는 나의 일상을 한 토막 수행일기로 엮어 보았다.
- 현대불교신문(2004.02.04, 2004.02.11) "릴레이수행일기" 게재- |
참선수행과 변화
